『양봉장 사건 수첩』 프롤로그
소설가 정기현과 농업전문기자 최용준은 2023년부터 지금까지 대전과 단양에서 벌을 돌보고 있다. 와글와글 바쁜 벌들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생리를 학습하고 그들이 겨울을 잘 버티기를 기도하며 지나온 시간 동안 이런저런 공상들이 인간 둘과 벌 떼들 사이에 자리하였고…… 아무렇게나 흩어진 공상 조각들을 갈무리해보자, 인간의 삶과 벌의 생애에 공통점이 스스스 고개를 들었다. ‘우발성’ 그리고 ‘이동성’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복잡한 이해관계와 얽히고설킨 사회 질서 속, 예상치 못한 장벽과 갈림길 앞에 끊임없이 멈추어 서다가도, 안주하는 것은 곧 죄악처럼 치부되는 이곳에서 어찌 되었든 끊임없이 앞으로 앞으로 이동한다. 벌은 자연에 터를 잡고 자연의 돌발적인 면모를 곧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며, 꽃꿀과 화분 채취, 분봉과 교미 비행, 적들의 침범을 막고 옆집 꿀을 훔치기 위해 움직이기를 한시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발견한 두 종족의 공통점을 손에 쥐고 무얼 할 수 있을까?
최용준과 정기현은 인간의 시선에서 벌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형식, 그리고 벌의 입장에서 인간을 관찰하는 하나의 형식(물론 벌의 입장이라는 것도 인간이 상상한 결과이지마는……)을 구상한 뒤, 그에 따라 탐구를 진전시켜 보았다. 나를 거울처럼 비추는 친구의 존재를 통해 자신을 보다 잘 알게 되듯, 이종의 존재들이 서로를 경유하여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면 상대에 대해서나 자신에 대해서나, 더 넓게는 무척이나 다른 생존 방식을 택한 두 종이 함께 살아나가고 있는 이곳 세계에 대해서…… 보다 깊은 알아차림이 가능하지 않을까?
《양봉장 사건 수첩》은 이러한 공상과 탐구와 경험이 뒤섞인 결과물이다.
먼저 〈죄와 꿀〉 코너에서는 벌과 꿀에 관하여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들을 아카이빙한 뒤 그것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탐스러운 꿀을 한 통 가득 채워 놓는 벌들은 먼 옛날부터 인간이 욕망하는 대상이었다. 구매한 벌통에 여왕벌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채고 판매자를 직접 처단하기를 나서는 인간, ‘너 벌집 만들어 주마’ 하며 바닥에 가스총을 쏴 대는 인간, 50년 전 몰래 읽어야만 했던 공산주의 서적을 벌통 안에 숨긴 인간 들은 오늘날 기록으로 남아 그에 대한 추적과 성찰이 가능하게 되었다. 농업전문기자 최용준이 인간들 사이 벌어진 사건을 통해 벌에 관하여 사유한다.
다음으로 〈살인벌 보리스의 모험〉 코너에서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세상을 마주한 벌 ‘보리스’의 모험을 통해 인간들의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을 들여다본다. ‘초개체’라고 일컬어질 만큼 군집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벌의 세계에서 보리스라는 이름을 지닌 벌이 한 개체로서의 생에 눈을 뜬다. 벌의 눈에는 인간들이 어떻게 비칠까. 벌과 인간이 슬픔, 사랑, 죽음에 대해 동시에 생각한다면 그 방향은 어떻게 달라질까. 소설가 정기현이 한 개체로서의 벌 보리스의 모험을 따라가며 인간들의 우왕좌왕을 들여다본다.
새끼손톱만 한 벌의 사라짐은 인간의 생존에 즉각적인 위협을 가한다. 인간이 스스로의 욕망을 방만하게 실현할수록 벌의 사라짐은 가속화된다. 서로에게 삶을 내건 인간과 벌이 지닌 공통점, 즉 우발성과 이동성에 《양봉장 사건 수첩》은 끈질기게 눈을 갖다 대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기를 시도하였다. 이 시도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새로이 빛을 밝힐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다음 연재(9/21) 미리보기:
〈죄와 꿀〉
1화. 쏜다고 죽을 줄 몰랐건만: 벌이 불러온 예기치 않은 사망 사건들에 관하여.
2화. 은닉: 벌통은 무언가를 숨기기에 좋은 장소일까? 벌통에 숨긴 물건들에 관하여.
〈살인벌 보리스의 모험〉
1화. 자유의 몸 보리스: 꿀벌 보리스, 애벌레를 돌보고 꽃꿀과 화분을 따오며 착실히 지내던 벌통을 떠나 인간들의 집에 입성하다!
2화. 창밖 살랑이는 이팝나무 꽃: 덩치 큰 집고양이와의 대화 끝에 야심차게 창밖으로 날아오른 꿀벌 보리스, 그런데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