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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받는 꿀] 1화. 쏘면 죽을 줄 몰랐지만

언제 처음 벌에 쏘였어. 물으면 사람들은 더 멀리 돌아가는 표정을 짓는다. 벌에 쏘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쏘였을 때 얼마나 따가웠는지, 어찌나 놀랐는지 바로 말하지 않는다. 조금 뜸을 들이다 별안간 아이 같은 표정. 아픔은 뒤로 미루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려내기 시작한다. 놀이공원에서 콜라 마시다 쏘였어. 알루미늄 캔 콜라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을 몰랐어. 점점 과장이 섞여든다. 귓가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어. 너무 커서 처음에 새인 줄 알았어. 콜라 먹다가 손등 쏘였어…가 입술로, 입술이 입안으로, 벌이 콜라를 타고 목구멍에 들어왔어.

벌 쏘임은 자신이 공격당한 일이란 점에서 무척이나 흥분된다. 어른이 될수록 세상 많은 사건을 인간을 통해 겪지만 벌 쏘임은 벌이 선사했다는 점에서 별나다. 갑작스러운, 그러나 견딜 만한 고통은 도리어 안도와 환희로 뒤바뀐다. 여기에는 깜짝카메라 당한 사람과 장난친 사람이 나란히 카메라를 보며 웃고 끝내는 소동처럼 하나의 완결성이 있다. 하지만 벌 쏘임이 내가 아닌 나와 다른 사람 한가운데 놓일 때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펄쩍 뛴다. 벌의 독침은 한 인간의 손등이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정조준하여 일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우기도 한다.

⚡️형의 벌이 동생을 죽이다

추석을 맞아 형의 집을 방문한 동생이 형이 키우던 벌에 쏘여 죽었다. 2018년 9월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0민사부는 삼성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형의 손을 한 번 더 들어줬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원고 승소했다. 삼성화재가 형에게 1억 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동생(당시 46세)는 2015년 9월 충북 증평군의 형 집을 찾았다. 집 근처에는 형이 키우던 벌통 열 개가 있었다. 동생은 다른 친척을 맞이하기 위해 서성이던 중 꿀벌에게 오른쪽 귀 뒷부분을 1회 쏘였다. 동생은 아나필락시스 반응으로 사망했다.

동생이 벌에 쏘이기 전인 2009년 형은 피고 삼성화재해상보험와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보험에는 ‘가족일상생활 중 대인·대물 배상책임 특별약관’에 따라 피고는 피보험자가 타인의 신체의 장해 또는 재물의 손해에 대한 법률상 배상책임을 부담함으로써 입은 손해를 1억 원 한도로 보상하게 돼 있었다. 형은 ‘동생 사망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으니 보험계약자인 삼성화재가 형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소를 제기했다.

법적 쟁점은 벌에 쏘인 것이 ‘우연한 사고’인지였다. 형은 보험 약관에 적힌 ‘피보험자의 일상생활로 인한 우연한 사고’에 벌 쏘임이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화재는 직무 수행하다 발생한 사고에 대한 보상은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형이 농업인인데다 전문적으로 양봉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직무상의 사고에 대해선 보험사의 책임이 없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재판부의 판단은 어떠했을까. 재판부는 동생의 사망이 일상생활 중 우연한 사고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양봉통에 사람이 가까이 갈 경우 양봉통에서 나온 꿀벌 또는 양봉통으로 인해 다른 곳에서 날아온 꿀벌 또는 말벌 등에게 쏘여 이로 인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양봉통 설치 관리자인 형은 사고를 방지하지 위한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해 동생 사망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피보험자인 형의 일상생활로 인한 우연한 사고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어 삼성화재는 보험자로서 형의 손해배상책임에 대해 보험금 지급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형 벌은 어때. 잘 크고 있지. 두 형제는 이따금 벌통의 벌들에 대해 전화를 주고받았을지 모른다. 양봉을 하는 형은 벌에 쏘여 본 적 있기 때문에 동생에게 과다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나도 가족을 양봉장에 데려가면서 혹시 벌 알레르기 있어? 물은 적 없다. 가족들이 쏘이면 되레 좋아했다. 아버지 아파. 따갑지. 하지만 어떤 쏘임은 친밀함에 구멍을 냈다. 형은 동생의 죽음에 대해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야 보험 처리가 가능했다. 벌에 쏘여 죽은 동생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는 형. 그리고 벌의 쏘임이 우연한 사고라고 해야만 하는 또 다른 중력이 있다. 그 모든 것 위에 모든 게 나의 잘못이어야 목숨값이 나오는 현실이 있다.

⚡️회사 봉사 동아리에서 동료를 죽이다

가족보다 조금 더 먼 사이에 벌이 개입하기도 한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은 노동이다. 직장 동료가 벌독에 오르는 상상을 한 적 있다. 죽어 버렸으면 싶어서 작은 벌통을 사무실 서랍에 넣어 두는 계략도 생각한 적 있다. 벌에 쏘여 처절하게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상사를 앞에 둔다면? 평소 악감정 탓에 그다지 슬프지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벌에 쏘인 것이 하필 내가 좋아하는 직장 동료였다면. 그러니까 상사를 쏘도록 숨겨둔 꿀벌이 의도치 않게 직장 친구를 쏜다면 어떨까.

꿀벌 침을 놔주는 사내 봉사활동 중 직장 동료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남성에 대해 법원은 징역형을 선고했다. 2015년 5월 28일 울산지방법원은 의료법 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남성은 의사가 아닌 데다 침을 맞은 피해자가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봉독 시술 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 고대로부터 이어지던 벌침의 의학적 효과는 오늘날 의사를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다.

남성은 2013년 기업 사내 직원들로 구성된 꿀벌봉사회에 가입해 회원들끼리 서로 혹은 비회원을 상대로 봉침 시술을 해왔다. 2014년 울산 소재 모 중공업 기업 내 꿀벌봉사회 사무실에서 남성은 왼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던 피해자 직장 동료(49)에게 왼쪽 팔꿈치 및 손날 부위에 벌침을 놓는 방법으로 봉독 시술을 했다. 남성은 봉독 시술 전 봉독 성분을 추출해 액상으로 정제한 약 침을 사용해 과민반응 여부를 검사하고 응급조치가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후송할 의무가 있었다.

남성은 동료에게 직접 과민반응 여부를 검사한 다음 벌침 다섯 대를 맞췄다. 시술 이후 동료에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이상 반응이 감지됐지만 남성은 응급처치가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후송하지 않았다. 남성은 동료에게 얼굴, 손가락, 발가락에 사혈침을 놓는 방식으로 자체적 응급처치를 했다. 이후에도 동료가 호흡곤란 등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보이자 그제야 119 구급대를 불렀다. 동료는 쇼크로 인한 심정지 발생 및 무산소성 뇌손상으로 약 2년간 재활치료가 필요한 식물인간이 됐다.

재판부는 “비의료인으로서 무면허 의료행위를 해 그 죄질이 좋지 아니하고 무면허 의료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현재까지 위중한 상태에 있고 회복될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점은 남성에게 불리한 정상이다”며 “다만, 동료 측과 합의한 점, 동호회 활동 일환으로 무상으로 벌침을 놓는 등 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중공업과 중노동 현장에선 크고 무거운 물건들이 태어난다. 그에 비해 목숨은 너무 가볍게 어딘가로 날아간다. 크고 긴 쇠파이프가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는 산업단지에는 사람보다 덤프트럭이 더 많다. 안전제일, 무사고 100일 같은 거대한 글자 아래로 트레일러와 탱크로리가 오가는 데 반해 벌의 독침은 작다. 아주 작다. 목숨은 무겁지도 크지도 않고 작고 가볍지도 않은 것 같고 그저… 뜻밖이다.

⚡️처마 밑 벌집이 이웃을 죽이다

2016년 10월 19일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제1민사부는 말벌집을 없애다 이웃집 I씨(37)를 죽게 만든 피고 E씨에 대해 I씨의 가족인 원고 F에게 4379만 1193원, F의 자녀인 G와 H에게 각 2836만 795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씨는 2015년 경기 양평군 자신의 집에서 2층 처마 아래 달린 말벌집은 막대기로 쳤다. 떨어진 말벌집에서 나온 말벌이 근처에 있던 I씨를 쏘았다. I씨는 바닥에 쓰러져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119를 요청했다. E씨가 곧바로 신고했지만 I씨는 죽었다.

재판부는 피고 E씨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E씨가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I씨가 주위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말벌집 제거 작업을 한 이상, 설령 E씨가 사전에 I씨에게 말벌집 제거 작업 사실을 고지하고 두꺼운 옷 등을 입고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말했더라도 E씨의 과실을 인정하는 데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I씨가 말벌집 제거 작업을 인식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벌독 알레르기라는 특이체질이 원인인 점은 E씨의 책임을 참작하는 사유가 됐다.

담 너머 이웃 사이에 들이닥친 벌은 한 사람을 죽였다. 내가 막대기로 떨어트리면 잽싸게 달아나는 거야. 큰일을 앞두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별일 아니게 되는 감정을 느끼고 싶어 서로 웃었을 수도 있다. 처마 밑 말벌들은 생각이 달랐다. 집이 무너지면 우리는 다 죽는 것이고 다 죽을 바에야 한 명이라도 저승길로 데려가겠다는 악다구니 생겼을 수도 있다. 나는 부모님이 6000만 원 전세 사기를 당해 잠 못 이루는 것을 보았다. 집주인인 지역주택조합에게 찾아가니 이미 조합장은 다른 사기죄로 감옥에 갔다. 벌에게도 인간에게도 집이란 그런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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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하지 말고, 벌이 셔츠 속을 지나 바지 속까지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상상일랑 절대 하면 안 돼!”

─빌 워터슨, 신소희 옮김, 『완전판 캘빈과 홉스』(북스토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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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은 죽음이 그러하듯 모두에게 공평하다. 꿀벌이 침을 쏘는 이유는 그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군집 전체를 살리기 위함이다. 꿀벌은 침을 쏘면 자신도 죽는다. 그들은 이렇다. 내 가족, 내 동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쏘아라. 누가 누구랑 친한지 상관없어. 걸리면 다 죽는 거야. 인간 사이에 진정한 관계라 여기던 것의 실체를 바닥까지 끌어내 공개 처형하는 것 같다. 너와 나는 이 정도 거리라고 생각하던 바가 벌 쏘임으로 짧아졌다 멀어지는 것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다가도 나는 끝없이 이 사람이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면? 이 사람이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한다면? 그럼 누굴 구하지? 왜 자꾸 멀고 가까움 내 안의 경중을 늪에 뜬 코르크 마개처럼 끝없이 띄우는지. 위기에 처하면 모든 규칙이 무너지고 그저 돌파해 나가는 감각만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 같다. 인간은 인간 사이에서 살아가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내가 가장 중요하다는 솟구침이다. 벌과 다르게도 인간은 그렇다.

벌이 인간 사이에 끼어 침을 마구 난사하면 당황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원래 이러려던 게 아닌데. 법정에 오르는 이유가 작은 벌 한 마리 때문이란 사실 앞에 사람들은 어쩌다 이런 일이 하고 땅을 치고 하늘을 원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눈동자보다 작은 벌이 내 인생 전체를 쏠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인생이라면 인생이다.

최용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