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받는 꿀] 2화. 조롱의 말에 달려 있는 꿀
가끔 자주 쓰는 단어가 낯설다. 자신을 얻었다. 자신을 가져. 자신 있어 없어. 자신감의 준말로 자신이 쓰이지만 자신(自信)을 믿는다는 한자어와 자신(自身)의 몸이란 한자어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제 몸이 있다고 여겨지는 감각이야말로 진정한 자신감 같다고 해냐 하나. 동시에 그렇다면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저버렸다는 말보단 오히려 내 몸이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을 때를 뜻하는 것 같다. 멈춰버린 기계를 만지는 감각처럼.
너가 대체 누구인지 알려 달라고 하는 사회에서 나를 향한 조롱은 깊은 수치심이 된다. 조롱은 비웃거나 깔보면서 놀림이란 뜻이다. 조롱하는 언어에 꿀이 덧대어질 때 조롱은 좀 더 강한 힘을 얻는다. 누군가를 대하는 언행이 너무나 가벼워질 때 조롱은 더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누운 입안으로 똑똑 떨어지는 꿀처럼 비웃음은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대신 쉽게 쉽게 목 뒤편으로 스스럼없이 넘어간다.
학교에서 친구에게 ‘앙 개꿀띠’
대전지방법원 제2행정부(심준보, 손호영, 박지숙)는 중학생 A군이 중학교장을 상대로 낸 서면사과 및 특별교육 이수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A군이 친구 B군을 놀리기 위해 “앙 개꿀띠”라고 반복적으로 놀린 것이 성적 수치심을 주고 가해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A군에 대한 선도 및 교육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중학교 3학년인 A군은 2016년 8월 평소 친하던 B군과 자주 장난을 쳤다. B군은 점심시간 다른 친구와 장난을 치다 “앙 개꿀띠”라고 말했다. A군은 “B군이 맞고 있는데 ‘아, 아파’가 아니라 ‘앙 개꿀띠’라고 말을 하니 보는 입장인 나와 친구들은 크게 웃었다”고 말했다. 이어진 주말 동안 A군은 B군과 다른 친구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B군에게 “앙 개꿀띠”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B군 측 주장에 따르면 A군은 “앙 개 꿀 띠 라는 말로 도배를 했다”는 것.
주말 사이 채팅방에서 앙 개꿀띠 소동이 있고 난 뒤 월요일에는 주먹다짐까지 벌어졌다. B군은 “월요일 1교시 수업이 끝나고 A군이 뒤에서 또 앙 개꿀띠라고 놀렸다”며 “B군에게 ‘얘기하지 말라고 했지’라며 A군을 째려봤지만 A군은 다시 ‘됐고, 오늘 하루 좋은 개꿀띠되세요’”라고 대꾸했다. 그 과정에서 B군이 분을 참치 못하고 A군을 때려 앞니 신경이 손상되고 윗입술이 찢어졌다.
A군 부모는 2016년 9월 중학교에서 학교폭력예방법 제12조에 의거해 열린 자취위원회에서 B군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학교 자치위원회를 통해 중학교장은 B군에게 서면사과, 학급 교체 처분, 특별교육 이수(B군 3일, 학부모 5시간) 처분을 내렸다. A군에겐 서면사과 및 특별교육 이수(A군 3일, 학부모 5시간)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A군 부모는 중학교장의 처분이 “지나치게 가혹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며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A군은 “2016년 8월27일 및 같은 달 28일 B군과 급우들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 '앙 개꿀띠'라는 말을 한 사실은 있으나, 이는 ‘기분이 매우 좋다’라는 뜻으로 사용한 은어 내지 속어일 뿐, B군을 비하하거나 경멸하려는 용어가 아니므로, B군을 놀린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앙 개꿀띠가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앙 개꿀띠란 말은 일본어로 ‘기분이 좋다’라는 뜻을 가진 ‘기모찌이이(気持ちいい)’에서 유래된 ‘앙 기모찌’에 ‘개꿀’이라는 표현이 더해진 은어이다”라며 “앙 기모찌라는 말은 일본 성인 동영상에 등장하는 말로 인식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성적인 의미를 담은 말로 쓰이기도 한다. 원고가 반복적으로 앙 개꿀띠라고 놀린 행위로 인해 B군은 성적 수치심, 스트레스 등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A군은 B군의 폭행으로 인해 좌측 상악 전치의 아탈구 등 4주간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 이는 B군이 A군의 놀림으로 인해 받은 피해에 비해 상당히 중한 피해를 입은 것”이라면서도 “중학교장은 가해행위의 경증을 고려해 B군에게 서면사과 및 학급교체의 처분을 하면서, A군에게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서면사과 및 특별교육 이수 처분을 했다. 이 처분이 A군의 가해행위에 대한 선도·교육 조치로서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온라인에서 애먼 사람에게 ‘꿀잼’
법원 판결문에 쓰인 그대로 표현하자면 E는 ‘자신의 초라한 처지가 여성 때문’이라는 증오심에 사로잡혔다. 그는 2023년 7월23일 오후 2시16분 한 온라인 게시판에 ‘흉기난동 살인사건’을 두고 다른 여성 이용자들과 댓글로 싸웠다. 이후 ‘한녀’들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시미칼(전체 32.5㎝, 칼날 21㎝)를 2만 1800원에 구매한 뒤 구매 내역을 올렸다. E는 게시글에서 모 지하철역 인근에 거주하는 피해자 20~30대 여성 7명을 살해하겠다는 내용을 썼다.
이밖에 E는 2023년 3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여성을 칼로 찔러 죽이겠다는 등 게시글 총 1930건, 댓글 총 166건을 작성했다. ‘30대 한녀 칼부림 개웃기네’란 제목에 “아 나도 구경하고 싶다 얼마나 빼액 거리면서 난동 피웠을까 크키 저 꿀잼을 놓치다니 나는 인생의 반을 버린거나 마찬가지라노”라는 게시글을 작성했다.
서울중앙지법(양진호)은 살인예비, 협박, 정보통신망법상 위반 혐의를 받는 E에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살인예비 내용이 기사화된 직후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흉기 구매를 취소하고 자수했다.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살인 실행에 착수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가족들이 정신과 치료를 꾸준히 받도록 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피고인이 인터넷 환경에서 감정을 발산하는 것 외에 직접 다른 사람들에 대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 전력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직 어린 글라우코스가 생쥐를 쫓다가 꿀단지 속에 빠져서 죽었다. 그가 사라지자 미노스는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고, 그를 찾기 위해 점쟁이들에게 물었다.”
―아폴로도로스, 강대진 옮김, 『아폴로도로스 신화집』(민음사, 2005)
벌은 춤으로 말한다. 오스트리아 동물생태학자 칼 폰 프리슈는 벌의 춤을 발견했고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20년대 프리슈는 꿀벌의 춤이 꽃의 먹이원을 알리는 의사소통 기능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폐허가 된 뮌헨 대학에서 오스트리아 시골로 연구실을 옮긴 후 과학적 증명이 가능했다. 꿀벌의 댄스에 정찰벌이 찾아낸 밀원의 방향과 거리 정보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관찰한 것이다. 전쟁통에서도 수십 년간 춤꾼을 쫓아다닌 결과다. 노벨상을 받을 당시 그는 60세였다. 벌의 춤에는 한 인간의 평생도 담겨 있다.
프리슈는 벌집에서 약 50m 이상 떨어지지 않은 밀원을 발견했을 때 꿀 수집벌이 원무(round dance)를 추는 것을 확인했다. 원무는 밀원에 대한 정보 대신 밀원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만을 전달한다. 밀원이 이보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8자 형태로 몸통을 흔드는 꼬리춤(waggle dance)을 춘다. 1초에 15번 정도 몸통을 좌우로 흔들면서 4㎝ 내외를 8자 모양으로 오간다. 꼬리춤은 원무와 달리 밀원의 위치 및 주변 상황 정보를 담고 있다.
꼬리춤이 펼쳐지는 무대는 벌통 출입구 근처다. 꼬리춤이 시작되면 곁에 최대 10마리 가량 벌들이 모여들어 같은 방식으로 춤추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더듬이로 춤추는 벌의 동작을 확인하고 이내 따라 추는 것이다. 프리슈의 발견에 따르면 중력 방향과 꼬리춤이 가리키는 방향의 각도가 벌집과 밀원의 위치한 곳의 방향이 된다. 또 밀원과 거리가 멀수록 더 오래 춤을 춘다. 더 재밌는 것은 매력적인 밀원일수록 8자를 더 빨리 그린다는 사실이다. 벌이 반원을 천천히 돌면 밀원이 영 별로라는 뜻이다.
인간의 언어도 춤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사람이 말을 할 수 있진 않았겠지? 바벨탑을 내려온 인부들처럼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시작했을 것이다. 어린아이를 보더라도 언어를 습득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고 그 전에는 표정과 몸짓, 울음과 소리 등 비언어적 표현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된 사람의 대화 역시 비언어적 표현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으니 춤은 댄서들만의 것이라기보단 언어의 명백한 일부라고 보는 편이 적절하겠다.
삶은 무대라는 상투적인 비유를 덧붙이면 인간과 춤과 벌의 연결고리는 더 뚜렷해진다. 어빙 고프먼의 무대 이론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무대 위의 연극 공연에 비유해서,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아를 연출·관리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언어가 우리 자신만의 메시지라기보단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어떻게 타자에게 비춰질지를 고려한 행위라는 것이다.
조롱은 무대 위 언어에 비춰 가장 극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별안간 객석으로 핀포인트 조명이 하나 떨어지고 모두가 그를 비웃는 장면. 조롱의 대상이 된 사람은 머릿속이 곧장 새하얗게 되는 수가 있다. 수련회에서 얼떨결에 무대 위에 올라가서는 내성적인 아이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감정으로 떨어트린다. 살면서 조롱 받은 기억은 잘 잊히지가 않는다. 반면 내가 한 조롱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내 손아귀 안에서 절그럭 거릴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마음은 한 없이 가볍고 언어도 그에 못지않아진다. 조롱의 말에 꿀이 달려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달콤함이 상대의 곤경과 가까울 때 더 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로 여럿 앞에서 나의 힘과 에너지가 내 안에서만 한정돼 맴돌 때 자신을 잃는다는 감각은 한 층 더 강해졌던 것 같다. 호주에서 햄버거 못 만든다고 백인들이 보는 앞에서 멱살 잡히니 자신감이 없어 더 실수만 했다.
인간의 조롱이 모두 앞에서 하나를 손가락질하는 명예훼손이라면 벌의 언어는 다소 강압적이긴 하지만 나는 말하고 너는 듣는다는 일방적인 정보의 전달, 혹은 공동체를 향해 자신의 소신을 알리는 행위에 가깝다. 전자 회로 같기도 하고 강력한 선동 같기도 하다. 아니면 잠에 빠져들게 하는 끝없는 토닥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내가 오른 무대에서 모두가 나의 춤을 따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무대로 재현하면 이렇게 보일 것이다.
나: 나 꿀 먹었어. 여기로부터 북쪽으로 20미터 정도 올라가면 때죽나무 꿀이 있어. 너는 못 먹어 봤지. 난 먹었다. 너: 어디 있는데. 나도 같이 좀 먹자. 나: 너가 알아서 찾아봐 안 알려줘. 나 혼자 개꿀 빨 거야. 너: 이런 개새끼. 뒤질래. 나: 죽여봐. 죽여봐.
나가 너를 덮치고 너가 나에게 저항한다.
벌1: (벌2에게 꽃꿀을 몇 방울 준다) 벌2: (벌1인 꽃꿀을 받아 먹고 벌통 입구에서 비켜선다) 벌1: (벌통 입구 주변에 자리를 잡고 몸을 흔든다) 벌3: (더듬이로 흔들리는 벌1의 진동을 감각한다) 벌4: (벌1이 추는 춤을 따라 몸통을 흔든다) 벌5: (몸통을 흔든다) 벌1: (몸통을 흔들고 원을 그린다) 벌6: (몸통을 흔들고 원을 그린다) 벌7: (원을 그린다) 벌8: (원을 그린다)
정찰벌이 벌통 입구 주변에서 춤을 추고 나머지 벌들이 어둠속에 벌의 몸짓을 느낀다. 조금씩 벌들이 첫 춤을 춘 벌의 움직임을 따라한다. 모두가 따라한다. 곧 날아간다. 나머지도 날아갈 것이다.
벌의 대사는 무대 위에서 지시문의 형태로 이뤄질 것인데 그들은 춤으로 말할 줄 알기 때문이다.
최용준
벌에 쏘인 손… 도라에몽 손이 되었다.
조요오오오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