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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받는 꿀] 5화. 왕국 간의 대격돌

양봉업자 간 싸움은 싸움이라고 하지 않는다. 결투이자 대결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보통이 아니란 것은 개새끼, 소새끼, 돼지새끼, 닭대가리새끼, 오리주둥이(축산법상 꿀벌은 가축에 속하지만 벌새끼란 비속어는 없다) 같은 욕설이 오가는 협잡꾼의 드잡이가 아니란 뜻이다. 양봉업자 간 승부는 체스와 복싱을 주고받는 ‘체스 복싱’ 11라운드(체스 6라운드, 복싱 5라운드)와 비슷하다. 그들의 권모술수와 앙갚음은 제갈공명과 파퀴아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복잡한 전쟁이다.

양봉인의 결투는 꽃과 여왕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꽃의 피고 짐은 자연에 따라 정해져 그 양에 한계가 있다. 여왕벌의 유무와 상태가 양봉의 성패를 가른다. 양봉의 성공은 결국 양봉인 자신보단 하늘과 벌 그 자체에 맡겨져 있는 것이기에 양봉인들은 그 둘을 두고 싸운다. 이때 양봉인의 결투법은 독살과 급습, 두 가지다. 두 가지 방식으로 대결하는 까닭은 역시 벌은 길들일 수 없어서다. 벌은 다른 가축과 달리 인간에 의지해 살아가지 않는다. 2만 마리 벌떼가 흩뿌리는 의외성, 불확실성, 통제 불능은 비열한 방법만으로 품 안에, 그것도 어느 정도만 둘 수 있다.

체스 복싱의 승패는 체크메이트 또는 KO다. 체스를 잘하는 쪽은 복싱 라운드에선 최대한 가드를 올리고 체스 라운드에서 퀸을 옮긴다. 복싱에 자신 있는 선수는 복싱 라운드에서 상대의 턱을 노린다.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코지로의 간류지마 섬 결투처럼 한쪽은 섬으로 들어가는 배에서 노를 깎아 목검을 만든다. 3척 검을 든 상대는 해변에 서서 바다 건너오는 쪽배를 바라본다. 그들이 서서히 서로에게 향하는 동안 넘실대는 물결 위에선 이미 수많은 전투가 치러졌다. 쓸려갔다 밀려온다. 지금부터 나올 양봉인들도 이 검사들과 다르지 않다.

도봉과 농약(대구지방법원 2018나308892 판결 손해배상(기))

2019년 8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제1민사부(이영철, 정한근, 이용욱)은 양봉업자 A씨와 B씨가 피고 C씨에게 “도봉을 방지하기 위해 설탕물에 농약을 뿌려 A씨 벌통 230개, B씨 벌통 145개가 폐사했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1심과 마찬가지로 기각했다. 2심에서도 C씨 손을 들어준 까닭은 C씨가 도둑벌을 막기 위해 농약을 뿌린 것으로 인해 A씨와 B씨 벌이 죽었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A씨와 B씨는 각각 5965만원, 3875만원을 손해배상을 요구했지만 C씨로부터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됐다.

원고들은 2017년 5월 2일 상주시에서 C씨를 경찰 신고했다. 이들은 C씨가 도봉을 막기 위해 꿀벌을 유인하는 설탕물에 농약을 뿌렸다고 주장했다. 이를 물어온 벌들이 벌통에 돌아와 농약이 든 설탕물을 벌통 안의 벌들과 나눠 먹어 꿀벌무리가 모두 죽었다는 논리다. 반면 C씨는 전날 스티로폼 상자 3개와 플라스틱 대야 1개에 설탕물을 넣고 스미치온 농약을 분무기로 1회 뿌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행위로 원고 벌들이 집단폐사할 순 없다고 반박했다.

2심 재판부는 “원고들 소유의 벌들이 피고의 양봉원에서 농약이 든 설탕물을 먹거나 농약에 오염된 상태로 돌아와 다른 벌들까지 죽게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면서도 C씨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꿀벌들의 집단폐사 원인이 C씨 탓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해서다. 원고와 피고 양봉장이 각각 620~820m 떨어진 점, 원고가 C씨 양봉장에서 농약 냄새가 난다고 진술한 점, 인근 과수농가에서 농약을 치는 점 등이 피고 C씨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판결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양봉장이 서로 떨어져 있고, 각 벌통의 벌들이 화분 채취를 위해 모두 무리를 지어 정찰비행을 하거나 이동하는 것이 아니므로, 일시적인 소규모 농약 살포로 인해 한꺼번에 대규모의 피해가 발생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가 농약이 든 설탕물을 담아 두었던 상자와 대야의 크기(스티로폼 상자는 벽돌 세 개 정도의 크기이고, 상자 안에 짚이 깔려 있으며 벽돌 한 장이 들어 있었다)와 수량(총 4개)을 고려하여 보면, 피고의 행위로 인해 단기간에 위와 같이 동시다발적인 대량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원고 A는 수사기관에서 '피고의 양봉장에 가보니 주위에 농약 냄새가 났다'고 진술하였다. 이러한 원고의 진술에 의한다면 상자와 대야에 든 농약의 농도가 상당했을 것이므로 원고들의 벌들이 대량으로 피고의 양봉장에 찾아와 설탕물을 먹고 돌아갔다면 피고의 양봉장 부근이나 그곳에서부터 원고들의 양봉장으로 가는 길에 상당수의 벌들이 죽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원고들의 벌들은 대부분 벌통 안팎에서 폐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참고인으로 참석한 양봉 관련 교수가 “농약을 먹은 벌들은 대부분 그 양봉장 근처나 돌아오는 과정에서 죽고, 전체 벌들이 폐사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페니트로치온 성분이 포함된 농약은 농촌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특히 이 사건에 사용된 농약은 과수뿐만 아니라 정원수, 가로수, 잔디의 해충 방제를 위해서도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으므로, 원고들의 벌에서 나온 페니트로치온 성분이 반드시 상자와 대야에 든 농약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여왕벌 살인사건(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2025고합8 살인, 시체은닉)

70대 벌꾼이 70대 벌꾼을 죽였다. 그리고 암매장했다. 법원은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여기까진 조금 특이할 뿐인 살인 사건이다. 범인은 체포 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벌통에 여왕벌이 없어 (벌들이) 다 죽게 됐다”며 여왕벌과 꿀벌 분양업자의 속임수를 범행 동기로 지목했다. 여왕벌의 유무가 살인의 형량을 좌우하진 않겠지만 양봉인 간 벌통 거래에서 여왕벌은 무척 중요하다. 벌통에 여왕벌이 없다는 것은 빈 벌통을 준 것과 다름없고 이는 기만이자 사기, 속임에 대한 보복으로 나아가는 전통적인 범죄 서사로 흘러간다.

D씨(74세)는 2025년 1월 27일 오전 8시 5분 정읍시 북면에 있는 피해자 E씨(77세) 양봉장을 찾았다. 기르던 벌들이 모두 죽어 봉침을 놓을 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농장을 비웠다가 돌아온 E씨가 D씨에게 “아침 일찍부터 나도 없는데 무슨 일이냐. 벌을 몰래 훔치기 위해 자신이 없을 때 농장에 찾아온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 둘은 언쟁을 벌였다. 집으로 돌아온 D씨는 E씨가 자신을 절도범으로 신고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E씨에게 사과하고 사건을 수습하기로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E씨를 살해할 목적으로 장도리 망치를 차에 싣고 다시 농장에 갔다. 판결문은 둘에게 서로 어떤 묵은 감정이 있었는지는 상세하게 기술해 놓지 않았다.

같은 날 오전 9시 40분 D씨가 “오해를 풀자”고 말했지만 E씨는 “나는 벌 도둑하고는 상대를 하지 않는다”면서 화해를 거절하고 계속 피고인을 “벌을 훔치려고 한 절도범”이라고 불렀다. E씨의 말에 D씨는 장도리 망치로 피해자 머리를 27회, 가슴을 수 회 내리쳤다. E씨는 두부 및 흉부 다발성 손상으로 인해 사망했다. D씨는 양봉장 도랑에 50㎝ 구덩이를 파 E씨를 흙과 나뭇가지로 덮었다. 살해 동기에 대해 D씨는 최초 언론 보도에서 “여왕벌을 빼놓고 벌통을 팔았다”고 말했지만 판결문에는 해당 진술은 없고 다만, E씨가 “벌 도둑”이라고 비난한 정황만 담겼다.

2025년 6월18일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제1형사부(정영하, 조소희, 이진규)는 살인 및 시체은닉 혐의로 기소된 D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갑작스러운 피고인의 공격에 숨을 거두기까지 엄청난 고통과 공포를 느꼈을 것으로 보이고,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을 지키지 못하고 정당한 장례 절차와 예우 없이 지하에 은닉될 뻔한 비극을 겪었다. 피고인은 피해자 측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며 “다만, 피고인은 1995년경 상해죄, 1998년경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로 각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 외에는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 피고인이 신체장애를 갖고 있고 74세 고령인 점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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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를 죽이던 그날, 그가 아파트 창문을 열었을 때, 진한 벌꿀 향기가 코로 밀려 들어왔다. 아, 오늘도 그 공장에서는 벌꿀 사탕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의 몸은 온통 피였다. T의 피와 자신의 피였다. 몹시 아팠다. 자고 싶었다. 벌꿀 냄새 때문에 그는 아름다운 봄날을 생각했다. 수많은 꽃들이 분노한 듯 만발하고 벌들이 떼 지어 옹옹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다. 그는 벌꿀 냄새를 맡으며 차가운 바닥에 누워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천쓰홍, 김태성 옮김, 『귀신들의 땅』(민음사, 2023)

벌은 작다. 일벌은 12㎜, 몸무게 80㎎다. 벌집 방 한 칸 직경은 5㎜다. 1㎝ 존재는 너무나 미미하여 죽음의 인과를 밝히기 어렵다. 인간의 살인은 그 출발이 벌보다 더 작은 1㎜ 여왕벌의 알처럼 헤아리기 어렵다. 봉충판을 들어 해 아래 비추면 벌방에 박힌 투명유백색 알들이 겨우 보인다. 알이 꿀벌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알-애벌레(유충)-번데기-성충까지 여왕벌은 16일, 일벌(암벌)은 21일, 수벌은 24일이 걸린다. 알 3일, 애벌레 6일까진 모두 같다. 하지만 계급마다 번데기 시간이 다르다. 여왕벌 번데기는 7일, 일벌이 12일, 수벌이 15일이다.

작은 벌은 작은 왕국에 산다. 그 왕국은 작아서 미지에 있다. 벌의 눈은 언뜻 겹눈 한 쌍만으로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겹눈을 보면 한쪽마다 육각형 모양 3000개 낱눈이 들어 있다. 인간의 눈으로 벌의 눈을 다 알 길이 없다. 양봉업계에선 ‘시력이 실력’이란 격언이 있다. 가장 중요한 꿀벌 사양 기술인 인공분봉(인위적으로 새 여왕벌을 만들어 벌통을 늘리는 기술)을 잘하기 위해선 눈이 밝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분봉은 C자 형태로 구부러진 5일령 애벌레를 이충기(핀셋)로 벌방에서 왕완(인공여왕벌집)으로 옮기는 일로 시작된다. 눈이 침침하면 유충을 제대로 옮기지 못해 상처가 나고 상처 난 유충은 여왕벌이 될 수 없다. 오죽하면 잘 보기 위해 헤드 랜턴까지 머리에 달고 할 정도다.

양봉인들은 작은 왕국에서 자라나는 작은 벌들의 성장 과정을 낱낱이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양봉인들에게는 그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꿀 수확량과 여왕벌 유무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꿀의 생산에 절대적인 꽃과 여왕벌의 존재 유무가 양봉인 자신들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기에, 양봉인들은 통제 가능한 영역에 대해서만큼은 편집증적인 면모를 보이기 일쑤다. 벌을 키우기 위해선 계획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통제광이 되어 버린 그들은 벌통을 열 때마다 왕이 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이집트, 수메르 문명에서는 왕을 상징하는 문자로 벌을 사용했다고 한다. 중세인들은 여왕벌을 남자로 여겨 벌을 두고 원탁의 기사도와 같은 그림을 남겼다.

내가 그러했다. 꿀이 가득 차 홀로 벌집을 들 수 없을 때, 마음 깊이 차오로는 자부심은 벌들이 벌통을 열면 솟구쳐 나오는 벌떼 앞에서 폭발한다. 온 산에 나의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면 여왕벌의 여왕벌이 되는 듯하고 나 역시 왕적 존재라고 귓속 날갯짓이 말하는 듯하다. 왜 벌을 키우세요. 벌의 왕국을 내려다보면 신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요. 이렇게 솔직하게 말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벌의 태어남. 벌의 움직임. 벌의 죽음. 모든 것을 하늘에서 보는 것은 대단한 광경이다. 벌통을 열어 빛을 비춰 어둠을 몰아내는 나. 이것은 비단 나만 하는 생각이 아니다.

그들은 매일 양봉일지를 써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기록하고 준비한다. 24절기를 모두 알고 꿀벌이 어느 때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그 식물의 이름은 무엇인지 모두 안다. 양봉인 마음속 쌓이는 지식에 비례한 권력욕과 반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의 불안은 전략과 전술을 고도화한다. 꿀벌 왕국의 스러짐은 스스로 그 왕국의 왕으로 군림했던 양봉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땅과 스스로가 무가치해진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왕의 전능감은 왕을 무법자로 만든다. 왕과 왕의 싸움은 일반 시민들의 때려 봐 때려 봐 깽값 벌자 같은 소란한 싸움과 달리 좀 더 살벌한 권력투쟁이 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왕의 자리에선 왕의 방식으로 싸우기 마련이다. 양봉인과 양봉인의 싸움은 그렇게 하나의 전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