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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벌 보리스] 3화. 매끈한 침

이팝나무에서의 시간이 하릴없이 흘렀다. 이쪽을 비추던 해가 저쪽을 비출 때까지. 그사이 나무로는 까치 까마귀 직박구리 방울뻐꾸기가 날아들었고 모두가 나 꿀벌 보리스를 한입에 먹어치울 수 있는 포식자였기에 나는 날개를 접어 둔 채 꽃송이 안에 들어앉아 눈으로는 계속 덩치 큰 고양이를 찾아 헤맸다. 고양이 쪽에서도 그새 지쳐 들어가 버린 걸까. 아니면 사실 자신 외의 또 다른 동물이 집 안에 들어온 것이 불만이었던 고양이의 무서운 계략이었던 것은 아닐지……. 아냐…… 그럴 고양이로는 도무지 생각되지가 않았고 나 꿀벌 보리스의 머릿속에는 초조하게 창가를 오가는 고양이가 그려졌다.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장면이 눈 앞에 나타난다면 정말 좋으련만.

땅밑으로 꺼지기 직전의 해가 무척 붉었다. 해는 양봉장이 있던 곳이나 여기 이 도시에서나 매양 같은 모습이구나. 일몰 직전 강렬한 햇빛 때문일지 나 꿀벌 보리스는 지친 머리에도 빛이 깃들었다. 묘수가 떠오른 것이다.

나 꿀벌 보리스가 채영준과 전기연의 집 안을 휘젓고 돌아다닐 때, 날개가 피로해지면 나는 복도 쪽으로 난 창틀에 앉아 그 틈으로 보이는 텅 빈 복도를 멍하니 바라보고는 하였다. 그러다 보면 밀랍으로 닫아 둔 꿀벌방 문을 열고 번데기가 부화하듯 다른 집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이 무감한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가 있었다. (엘리베이터라는 것도 다 그 덩치 큰 고양이가 알려 준 것……) 기다리는 얼굴들 중 몇몇은 나 꿀벌 보리스의 눈에도 익었는데, 그 얼굴들로부터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 익숙한 얼굴들을 찾자. 엘리베이터 앞의 사람들도 좋고, 운이 좋다면 밖으로 나온 채영준 전기연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곧장 그들의 머리털 안으로 숨어들 수만 있다면 나 꿀벌 보리스는 다시 덩치 큰 고양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날아가는 와중 새들의 표적이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나 꿀벌 보리스가 아는 가장 사나운 새, 까치.

그때 까치처럼 검은 옷을 입은 익숙한 얼굴의 인간이 건물 바깥으로 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지금이야! 나 꿀벌 보리스는 표적을 향해 전력으로 날았다. 제발 어떤 새도 나를 볼 수 없기를, 눈에 띄면 그걸로 끝장이다, 더 빨리 날아야 해, 더 빨리……. 날개가 돌이 되어 뚝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나 꿀벌 보리스는 구상한 작전대로 인간의 머리털 안에 안착하였다. 그 역시 급히 돌진해야 할 표적이 있는 듯 길가까지 뜀박질을 하였기에 다리 마디를 머리털에 엮어 몸을 단단히 고정해 두어야 했다.

그는 큰길에서 대전 산림욕장에 방문하는 인간들도 애용하는 듯하였던 움직이는 쇳덩어리 방(역주: 자동차)을 잡아타고 ‘대성아파트 1동 관리실 앞이요.’ 말하였다. 음…… 대성아파트 1동 관리실 앞에 가서도 내내 이 인간의 머리털에 엉겨 있을 수 있을까. 물론 나 꿀벌 보리스에게 가능 여부를 따질 겨를은 없었다. 무조건 해내야만 했다…….

머리칼에 유분이 부족한지 계속 묶어 둔 다리가 한쪽씩 풀려, 나 꿀벌 보리스는 흔들리는 방 안에서 애를 먹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인간은 다시 뛰기 시작하였다. 채영준 전기연의 거주지와 비슷한 철문을 두드리자 슬픈 얼굴의 자그마한 인간이 나와 머리칼에 유분이 부족한 인간을 와락 껴안는 바람에 나 꿀벌 보리스는 그대로 머리통에서 튕겨져 나갈 뻔하였다.

집 안에는 인간들이 열 명 가까이 모여 있었고 그들 중 몇은 때때로 한곳을 바라보았다. 눈길들이 향한 곳에는 또 다른 나무 문이 굳게 닫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문을 열고 흰 가운을 입은 인간이 마른 손을 비비며 걸어나왔다.

─네 잘 떠나시도록 확인 마쳤고요. 이제 병원으로 가야 할 텐데 어떤 분이 가시겠어요?

마른 손을 비비던 인간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저희 그러면 십오 분 정도만 예배를 드리고 가도 될까요? 저 하고 이 사람이 갈 겁니다. 나 꿀벌 보리스가 숨어 있는 머리통의 소유자가 답하였다. 흰 가운을 입은 인간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는 곧장 나무 문 안을 향해 걸었고 그 뒤를 다른 사람들이 따랐다.

나무 문 안쪽 방 한가운데에는 철제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죽은 사람이 놓여 있었다. 죽은 사람은 꿀벌로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죽은 꿀벌 동료들은 셀 수 없이 보았지만 죽은 인간은 처음이었고 인간은 너무도 커다래서 죽음도 커다랗게 다가왔다. 나 꿀벌 보리스는 방 안의 공기가 무척이나 답답하였는데 인간들은 그렇지도 않은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몇몇은 입을 벌리다 말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럼 마지막으로 제가 대표로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도 눈이 마른 사람들도 일제히 눈을 감았다. 나 꿀벌 보리스는 시체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여성 인간의 시체였고 처음에는 무척이나 큰 것처럼 느껴졌으나 흰 가운을 입은 남자나 내가 올라탄 이와 비교해 보자면 훨씬 작고 마른 체구의 소유자였다. 내가 올라타 있는 이는 중얼중얼 기도를 외며 때때로 엄마…… 엄마…… 하였다. 그때 그 체구 밖으로, 죽은 이와 꼭 같은 생김새의, 그러나 눈을 똑바로 떴을 뿐만 아니라 누워 있는 신체보다야 훨씬 건강해 보이는 안색의 존재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오랜 잠에서 깬 듯 멍한 얼굴로 자신을 둘러싼 눈을 꼭 감은 사람들을 휘 둘러보았다.

─아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그가 그리 큰 소리로 외치는데도(나 유령이 되었다 아들아 딸들아 사위들 손주들아! 곧바로 천국에 갈 줄 알았는데 그것은 아닌가 보구나, 너희들은 그렇게 믿고 기도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아무도 듣지 못한 듯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 역시 곧 자기 목소리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낙담한 듯 고개를 숙였다.

─너!

죽은 인간의 방에는 무엇이 있나 궁금하여 나 꿀벌 보리스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단말마 소리가 꽂혔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방금 깨어난 유령이 나 꿀벌 보리스 쪽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부릅뜬 눈동자로부터 전해지는 힘이 대단해 순간적으로 나 꿀벌 보리스는 겹눈 둘과 홑눈 셋을 모두 내리깔았다.

─너 살해의 경험이 있지!

유령은 눈을 피할 생각이 없다는 듯 나 꿀벌 보리스를 향해 되물었다. 살해의 경험이라…….

질병으로 죽은 벌, 벌통 안에서 쓸모가 없어져 내쫓겨 죽은 벌, 알을 낳지 못해 공격당한 여왕벌, 말벌과 싸우다 최후를 맞은 벌……만큼, 벌들은 누군가를 죽이고 죽는다. 꽁무니에 달린 침을 꽂으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고, 공격한 자신 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는 꿀벌의 침에 역방향으로 달린 미세한 미늘 탓이다. 미늘 때문에 벌들은 적의 살갗으로부터 침을 빼낼 수가 없고, 빼내려고 애를 써도 빠지는 쪽은 침이 아니라 벌의 내장 쪽이 되기 십상이라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 꿀벌 보리스는 일찍이 생각했다. 미늘을 없애면 적도 해치고 나도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나 꿀벌 보리스는 밤마다 칼을 갈 듯 미늘을 물어뜯었다. 도끼 한 자루 가지고 나무 집을 짓듯 지난한 과정이었으나 마침내 갖게 되었다. 잘 간 칼처럼 미늘이 다 떨어져 나간 매끈한 침을. 벌통 단위의 전투가 벌어질 때 수많은 동료들이 적의 몸체에 침을 꽂고 그 자신도 죽음을 맞았지만 나 꿀벌 보리스는 언제나 살아남아 벌통 안 아늑한 잠자리로 복귀하였다. 그러니까 살해의 경험이라…… 이제는 셀 수조차 없을 것이다…….

역방향 미늘 탓에 침을 빼려면 내장도 함께 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