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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받는 꿀] 4화. 은닉

제이슨 스타뎀 주연 영화 『비 키퍼』(The Beekeeper, 2024)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가장 많이 소개받는 영화다. 취미로 양봉을 한다고요. 네 꿀벌이 너무 좋아서요……. 그러면 혹시 『비 키퍼』 보셨어요. 네 호주에 꿀 사러 가는 비행기에서 봤어요. 『비 키퍼』는 팝콘 무비로 꽤 괜찮은 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비밀조직인 ‘비 키퍼’ 속 스타뎀이 맡은 주인공이 권총을 숨긴 곳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 쳐들어왔을 때 벌통에 손을 쑥 집어넣고 빼들어 탕.

『비 키퍼』 말고는 「나는 자연인이다」 속 ‘말벌 아저씨’를 아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둘 중에는 아무래도 『비 키퍼』가 양봉인의 멋진 모습을 살려준 것 같아 꽤 고마운 영화다. 그런데 친구들은 내가 뛰기만 하면 비 키퍼다!라고 하지 않고 말벌 아저씨다!라고 외친다. 한 번쯤 사람들이 나를 비밀 요원이라고 상상해 주면 좋겠건만…….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말벌 아저씨 쪽이 좀 더 비밀스럽긴 하다. 더 수상해!

벌통 속 공산당 선언(대법원 71도1414 판결 반공법위반, 장물취득, 총포화약류단속법위반)

1971년 대법원 재판부(이영섭, 홍순엽, 양희경, 주재황, 민문기)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전원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하급심에서 이미 A씨는 혐의가 없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 대리검사 신인수는 상고를 했고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무죄 원심을 유지했다. 그러니까 A씨가 공산주의 서적을 벌통에 숨긴 것에 대해 자칫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당하거나 갇힐 뻔한 사건에 대해, 한 생명에게 죄가 없다고 본 것이다. 1970년대는 이런 시대였다.

1960년 6월 A씨는 서울 신문로 광화문4거리 국제극장 옆 모 서점에서 기초 공산주의 이론 및 그 실천에 관한 일본서적을 구매했다. 권당 250원, 600원이었다. 책 2권을 읽고 집 뒤뜰 벌통 속에 숨겼다. 판결문 속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여기까지만 적혀 있다. 단지 그가 국무원 사무처 인사과 임시촉탁으로 근무할 당시 공산주의 관련 책을 샀다는 문장만이 써 있는 것이다. 감히. 신성한 공무수행을 수행해야 할 신분에. 감히. 빨갱이 서적을 읽어. 죽고 싶어. 검찰은 기소했다.

판사들은 이렇게 판단했다. “기초 공산주의의 이론 내지 그 실천에 관한 서적을 구입해 벌통 속에 은닉 보관했다 하여도, 단지 학구적 이념에서 구입했고 장서용으로 하기 위해 보관한 것이라면, 그 사실만으로서는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이를 취득 또는 보관한 것이라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은 아주 긴 만연체로 돼 있다. 주문 이유가 딱 두 문장으로 돼 있다. 매우매우 긴 문장을 따라 가다 보면 재판정에 서서 판사의 말을 듣고 있을 A씨가 상상이 되는데 벌통 속 벌들의 웅성거림처럼 그 두려움이 가슴 속 메아리쳤을지 헤아릴 길이 없다.

“원심은 그 적시된 증거로서 피고인의 경력과 그 사상관계 등으로 보아 공산주의자가 아닐 뿐 아니라 그에 동조할 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피고인은 경찰이래 원심 공판정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은 다만 공산주의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자 하는 학구적 이념에서 위와 같은 서적을 구입한 것에 불과하고 이를 위와 같이 보관을 한 것은 장서욕에서였을 뿐이라고 종시 주장하고 있다” ‘사상’과 ‘관계’라는 단어가 하나된 것도. 동조할 자가 아니라는 점도, 장서욕이란 말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인간은 무엇을 소유하는지에 따라 인생이 갈리지만 꿀벌은 꿀을 모으는데 모든 것을 바친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꿀단지 속 대마(2018고합17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대마))

대마를 꿀단지에 숨기는 전략은 양봉인 입장에선 솔직히 말해 좀 애석하다. 꿀은 마약처럼 황홀할 순 있지만 마약은 아니다. 고대인들은 꿀을 마약처럼 여기기도 했다지만. 농사꾼에게 마약은 어쩌면 정반대편의 것이다. 미국에서 대마 농사하는 멕시칸은 대마 하지 않고 콜롬비아서 코카나무 기르는 인디오는 코카인 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간편히 자기 통제 하에 약물을 하는 얄팍함과 밭에서 돌을 골라내려고 허리를 숙이는 일은 같은 땅 위에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2019년 9월 19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제1형사부(최창훈, 최은경, 정우용)는 대마를 3차례 판매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B씨에 대해 총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B씨는 2016년 12월 3일 밤 12시 강원 홍천군 한 도로에서 C에게 대마 300g을 건네주고 그 대가로 100만 원을 받았다. 또 2018년 1월 18일 낮 1시에 서울 은평구 구파발역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대마 0.5g을 은박지에 말아 흡입했다. 같은 날 저녁 6시 30분에는 은평구 집에서 대마 120.99g을 통에 담아 보관했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B씨가 대마를 건넨 방식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B씨는 “대마가 들어있는 꿀단지를 무상으로 건네주었던 것이지, 매도해 대금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B씨는 형을 무겁게 할 수 있는 ‘돈 받고 마약을 판매’한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대마를 구매한 C씨의 진술에 비춰 재판부는 B씨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C씨는 지인이 대마를 사고 싶다고 하자 “B씨는 자신의 친한 후배로서 현재 몸이 아픈데 치료비 마련에 힘들어해 피고인을 도와주기 위해 대마를 매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유죄를 판단한 근거이자 양형에서 유리한 정황은 B씨의 건강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 B씨는 C의 친분을 고려하더라도 피고인이 꿀단지 1통에 가득 담겨 있는 대마를 무상으로 C에게 건네줄 이유가 없는데다가, 당시 피고인은 건강상의 이유로 치료비 등에 들어갈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가지고 있던 대마를 매도하는 것 외에 돈을 마련할 별다른 방법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등 현재 건강이 좋지 아니하다”고 말했다.

B씨는 대마를 파는 병든 자였다. 대마가 고대부터 이어지던 치료제였을 텐데. 천연 대마를 흡입해야 심신 안정을 취할 수 있다 보니 대마를 몰래 파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좀 그렇기도 하다. 난치성 환자가 건강에 좋은 꿀 대신 대마를 꽉 눌러 담은 꿀단지를 건넸다. B로부터 대마를 매수한 사람들의 또 다른 항소 재판이 있다는 것은 좀 웃긴 점이다. 그들이 항소한 이유는 이렇다. B씨가 준 꿀단지를 건네받고 돌아와 저울로 그 무게를 재어보니 당초 약속한 300g이 아닌 150g이었다. 1심에서 300g을 구매해 죄가 무겁다고 보고 B에게 속아서 150g만 샀으니 형을 줄여달라는 주장이었다. B는 아픈 인간이지만 대마를 꿀단지에 팔았고 같은 떨쟁이들에게 팔아치운 대마의 양마저 숨겼다.

119 옥상 위 벌통(수원지방법원 2017. 8. 22. 선고 2017구합597 판결 감봉처분취소)

토종벌 벌집을 제거해 달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이 벌집을 뜯어와 소방서 옥상에서 키웠다. 소방대원은 벌을 죽이기는 아쉬웠다. 토종벌을 옥상에서 살뜰히 길렀고 꿀도 구조대원끼리 나누어 먹었다. 하지만 주민 신고로 소방서에서 꿀벌을 키운 것이 들켜 징계위원회에서 견책 처분을 받았다. 사람을 살리는 인간이 매번 그랬듯 사람 말고 다른 것을 살렸지만 그건 사람을 살리는 일과는 달랐다.

소방관 D씨는 2013년 5월 11일부터 2016년 7월 21일까지 약 3년 2개월간 업무 중 취득한 토종벌을 119안전센터 옥상에서 키웠다. 3년간 17개 벌통을 키웠다. 벌들이 붕붕 날아다니던 안전센터는 구조와 위협이란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하는 공간이었던 것 같다. 옆 주민이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이유로 민원을 2회 제기하면서 문제가 됐다. D씨는 다시 벌통을 보이지 않는 데 숨겨 1년을 더 키웠다. 하지만 주민이 다시 벌통을 발견해 이의를 제기하자 D씨도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이 벌통을 걷어찼고 D씨는 주민을 경찰에 고발했다. 주민은 고작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검찰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기소를 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D씨는 경찰에 이웃을 고발하면서 도리어 다툼을 키웠다. 곧장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벌을 키운 점, 또 민원인과 다투는 등 공직자 품위를 손상한 점을 들어 감봉 1월 처분을 받았다. D씨는 벌을 키운 것은 영리목적이 아닌 점, 과거 표창을 받은 점을 근거로 불복했지만 징계 처분은 견책으로 한 단계 내려갔을 뿐 그대로 징계는 유지됐다. 견책은 가장 낮은 단계의 징계다. 하지만 D씨는 견책 처분에도 불복해 이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D씨는 “출동을 나가 취득한 토종벌을 죽이기 아까웠기에 청사에서 벌통을 두고 양봉을 했을 뿐 그로부터 개인적 편의나 이득을 취한 사실이 없다. 양봉을 통해 수확한 꿀은 수확 당시 청사에 있는 직원들과 나누어 먹었을 뿐 어떠한 경제적인 수익을 얻은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주민이 심야에 주취상태에서 벌통을 치우라고 요구하면서 벌통을 발로 차 망가뜨린 점을 고려하면 원고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 공무원의 품위를 손상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수원지방법원 제5행정부(박형순, 곽태현, 문증흠)는 119센터 옥상에 숨겨 둔 토종벌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는 소방청사를 그 취지와 목적에 벗어나 자신의 양봉을 위하여 사용하였으므로, 공용물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소방청사 옥상에서 양봉을 하여 인근에 거주하는 H의 주거로 벌이 들어가게 하는 등 수차례 민원을 야기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원고의 이러한 행위는 사회통념상 비난받을 만한 행위로서 공직의 신용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D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내가 판사면 소방관 편들었다. 벌통을 발로 차다니 살인 안 난 것이 다행이다. 이로써 구조대원은 옥상에 벌통을 숨겼다. 마약사범은 대마를 꿀단지에 숨겼다. 비정규직 공무원은 벌통 속에 불온서적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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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플로런스 씨는 보통은 키우는 벌들을 차분하고 멍하게 만드는 데 쓰는 양봉 훈연기를 가져와서 덜위치 픽처 갤러리 경비원의 얼굴에 대고 연기를 뿜었다.”

─마이클 온다치, 아밀 옮김, 『기억의 빛』(민음사, 2023)

꿀벌은 꿀을 숨기고 양봉인은 찾는다. 선하고 좋은 것은 드물고 탐내는 자들은 많다. 오래전 꿀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음식으로 여겨졌다. 호메로스 계열 신화 전통에서 신들은 암브로시아(ambrosia)와 넥타르(nectar)를 먹고 마시며 불멸을 유지한다. 넥타르는 어원적으로 “죽음을 이기는 것(nektar)”이라는 뜻이며, 그리스 신화 연구자들은 넥타르를 꿀 혹은 꿀 기반 음료로 해석했다. 성서에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불린다. 꿀은 신과 인간을 잇는 단맛이었다.

예로부터 단맛은 자연이 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었다. 잠깐 눈을 감고 가공식품이 없는 세상을 떠올려 보자. 모든 것을 자연에서 찾아야 한다면. 벌이 꽃꿀로부터 만들어낸 꿀만큼 순수한 결정과 강렬한 정념처럼 보이는 먹거리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단맛에 대한 커다란 갈망은 동굴 벽화에도 기록돼 있다. 인간이 연기를 피우고 벌집에게 다가가는 그림이다. 쏘이더라도, 나무를 타고 올라가더라도 꿀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고대로부터 이어졌다.

꿀은 안쪽 깊숙이 저 어딘가 있다. 꿀이 벌통 안쪽에 있는 이유는 모든 동물들이 꿀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벌은 꿀을 지킨다. 꿀벌이 꿀을 모으는 이유는 꿀을 먹고 살아서도 있지만 꿀이 충분해야 겨울을 날 수 있어서다. 양봉업자가 꿀벌의 겨울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점검하는 것 중 하나는 벌방의 문이 닫힌 채로 저장된 꿀이 얼마나 있는지다. 벌떼는 겨울 동안 동그랗게 뭉쳐 꿀을 에너지 삼아 열을 내어 살아남는다.

꿀벌에게 꿀은 일생을 바친 웅덩이이자 샘물 같은 것이다. 벌 1마리는 평생 꿀 약 1g을 모은다. 1회 꿀 운반량은 약 30㎎에서 60㎎이다. 벌 1마리 몸무게는 80㎎에서 130㎎로 자기 몸의 3분의 1에 달하는 무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꿀 1㎏은 꿀벌 1000마리의 생명이 담긴 정수다. 소중한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숨기는 것은 본능이다.

꿀에 깃들어 있는 무한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꿀벌을 감히 해치지 못하게 한다. 소방관은 일반적으로 물을 쏘아 벌을 내쫓는다. 그가 고스란히 벌 무리를 데려온 이유는 벌들의 뭉침에는 함부로 흩을 수 없는 몸짓이 있어서다. 대마를 하필 꿀단지에 숨긴 것도 꿀단지에는 으레 귀한 것을 숨겨서다. 공산당 책을 벌통에 숨긴 것은 온몸을 던져 꿀을 지키는 벌들의 용맹에 자신을 기댄 것일 테다. 꿀의 은유는 이렇다.

나 역시 토종벌을 살린 바 있다. 그 과정을 2026년 5월 16일 파이낸셜뉴스 온라인 기사로 남겨두었다.

💡 https://n.news.naver.com/article/014/0005522278